◇ 시인과 시(현대)

손한옥 시인 / 만두를 먹다가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0. 10. 05:00

손한옥 시인 / 만두를 먹다가

 

 

 대책 없이 속이 터지는 건 순전히 껍질을 만든 손 탓이지 만두 탓인가

 어디 만두뿐인가 옹졸한 속알 보이지 않고 꾹꾹 잘 눌러져 단단하게 여며지고 싶지

 

 60여년 잘 다독이며 살다 가신 울 엄니 아버지 사랑법처럼 말이지

 하기사 울 아버지 외동 손에 아들 다섯 딸 셋 키우시는 엄마가 고맙고 생감스러워 무얼 마다 하셨을까 사랑은 이런 거다 보여주며 살아가신 아버지 사랑법 바라보며

 내 사랑도 그리 살뜰히 살겠다 맘먹고 맘먹었지

 간 갈치 한 꾸러미 사들고 너울너울 흰 두루마기 물결처럼 펄럭이며 다죽강 건너는 길

 자갈도 뜨거운 땅에서 뽑은 피리꽃

 쪼대 흙 한 줌으로 뭉쳐들고 오셔서 엄마에게 드리던 너털웃음

 단 한 번도 속 터지지 않는 그런 사랑

 

 그리 보고 살았는데 쌈닭 나는 닭이 되고 말았다

 할퀴어야 살고 쪼아야 먹고 살지만

 새도 아닌 시원찮은 날개로

 닭 벼슬도 벼슬이라고 부리 위에 생뚱맞아

 차라리 붉디붉은 맨드라미나 되지

 불안정한 발걸음 뒤뚱거리는 품새라니

 쌈도 쌈 같지 않아 용맹도 없고

 앞도 뒤도 없이 뒤숭숭 질정 없어

 지상가상 분별없어

 구업만 쌓아가는 쌈닭 자칭은 영웅이다

 

 안보이면 서로 앞 뜰 뒤뜰 들쑤시고

 보이면 너 오늘 잘 만났다

 전 전생부터 웬수인 듯 퍼덕거리는 날개

 불붙은 관솔이다

 

 오늘 먹는 만두

 먹는 것마다 사정없이 터지고

 여전히 나는

 만두 탓이 아니다 아니다 말하고,

 

 


 

 

손한옥 시인 / 어머니의 축원은 영험 있었다

 

 

니 닮은 딸 하나 낳아야 에미 속을 알지

얼마나 간절했던지

생전에 이룩하지 못하자 하늘에 오르셨어도 그 축원 놓지 않으셔서

아들만 낳은 딸에게 결국 조손을 통하여 축원을 이루셨다

영남루 기둥만한 다리로 날씨가 좋으면 날이 좋아서

철기 날개 같은 치마 입고 들로 산으로

비 내리면 비와서 더욱 좋아 우산 쓰고 장화 신고

비 방울방울 풀잎 꽃잎에 녹아들고

허물소리 훈계소리 상 논리로 따져 하늘 대왕구도 못 갚아

해마다 담을 넘는 어머니 축원

한으로 남았으니

 

축원했던 그 딸

어머니 혼자서 깨우치신 언문에 절하고 감복한다

뼛속까지 시의 보고 너울너울 넘치고 구구절절 말의 재담 조선 팔도 이야기와 야담들

어머니 버전으로 뼈 붙이고 살 붙여서 보감 같은 어머니 어록들 날마다 섭수되어 나의 시 종자에 싹트는 시인이셨어라 귀재셨어라

 

경인년 구월

백호 호랑이 배고파 먹이 찾아나가는 시간

피도 뜨거운 아이가 태어났다 성정도 감성도 기막히게 닮아

나 닮아서 이쁘고 나 닮아서 미워

내가 어렸을 적

백일장마다 한 번에 다섯 개씩 써서 아이들에게 주었는데

이 아이 한 번에 다섯 개씩 시를 만든다

보는 것마다 시가 되어 깜짝깜짝 놀랜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더러움과 얼룩을 외면하지 않는,

노인의 굽은 등을 통증의 내 등으로 바라보는,

싸리나무처럼 여윈 큰오빠의 팔이 백척간두로 보이던,

크레용 같은 노랑참외를 자르지 않고 주고 싶은,

어둡고 차가운 밤 시린 얼굴로 들어오는 사람을 볼 때마다

 

아리고 슬픈 세상의 곡비되자

강생아 우리 강생아

나 닮아도 좋은 거다 이만하면 괜찮다

가자가자 우리도 축원하러 가자

세상의 곡비되자

 

 


 

손한옥 시인

경남 밀양 출생. 2002미네르바로 시 등단. 2006한국미소문학으로 동시 등단. 시집으로 목화꽃 위에 지던 꽃』 『직설적, 아주 직설적인』 『13월 바람』 『그렇다고 어머니를 소파에 앉혀 놓을 수는 없잖아요』 『얼음 강을 건너온 미나리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