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희 시인 / 삼척 외 1편
김언희 시인 / 삼척
너는 게를 좋아하고 게라면 사족을 못 쓰고 네가 발겨 덕은 게 껍데기만 해도 경주 남산 고분군만은 하고 넌 죽으면 게가 될 거야 되면 좋지 뭐 등딱지를 뜯기고 사지를 뜯기고 발가락 끝까지 꼭꼭 씹혀서 개은하게 발겨 먹히면 좋지 뭐 삼척 망상 무한리필 대게집 무한 리필되는 대게 무더기 앞에서 산더미처럼 쌓여 올라가는 게 껍데기에 에워싸인 채 대게를 뜯는다 먹어도 먹어도 헛헛한 대게 대게가 아니라 대게의 유령 같은 리필용 대게 게딱지는 종잇장처럼 말씬거리고 살은 흐를 듯 무른 유령 대게 뜯으면 뜯을수록 헛헛해지고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휘취해지고 있다 빈 대롱 같은 게 다리 텅 빈 대롱들이 나를 휘, 휘, 불고 있다 시뻘건 네온 게 다리가 풍차처럼 돌아가고 있는 삼척 망상 무한리필 대게집 무한 리필되는 파도와 무한 리필되는 물거품들이 무람하게 넘나들고 있는 밤의 유리창 누군가 망연자실 들여다보고 있다 제 유령을 처음 보는 유령의 얼굴로
김언희 시인 / 한점 해봐, 언니
한점 해봐, 언니, 고등어회는 여기가 아니고는 못 먹어, 산 놈도 썩거든, 퍼덩퍼덩 살아 있어도 썩는 게 고등어야, 언니, 살이 깊어 그래, 사람도 그렇더라, 언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썩는 게 사람이더라, 나도 내 잘 썩는 냄새에 미쳐, 언니, 이불 속 내 가랑이 냄새에 미쳐, 마스크 속 내 입 냄새에 아주 미쳐, 언니, 그 냄샐 잊으려고 남의 살에 살을 섞어도 봤어,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더라 온 김에 맛이나 한번 봐, 봐, 지금 딱 한철이야, 언니, 지금 아님 평생 덕기 힘들어, 왜 그러고 섰어. 언니, 여태 설탕만 먹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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