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유석 시인 / 봄눈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0. 15. 05:00

김유석 시인 / 봄눈

 

 

어미와 새끼 중 하나를 택하라는 말에

어미를 살렸다

 

난산難産끝,

가쁜 어미의 숨결과

스르르 닫히는 송아지 눈꺼풀 사이

 

망설이듯 내리는 눈

 

수의사도 내 귀에도 안트이고

어머의 몸에만

배냇짓처럼 얹히는 눈

 

저절로 녹아

물기만 남기는 그것을

 

어미는,

울음으로 꺼낼 수 없었다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2. 3월호

 

 


 

 

김유석 시인 / 버려지는 신발들은 슬프다

 

 

사람들은 왜 신발을 벗어 두고 가는 걸까

그게 슬펐다, 그 어떤 유서보다

물가에 가지런히 놓인 구두 한 켤레

 

어느 헐거운 길이 거기까지 따라와서

맨발이 되었을까

 

문단속을 하는 대신

토방에 신발을 반듯이 올려놓고 집 비우던 아버지

삼우제 날 문밖에 내어 태우던

부르튼 발바닥들이 슬펐다

 

그래서일까

유령들은 대부분 발을 감춘다

 

신발을 신고 있다는 건

어디쯤의 고단한 이정(里程)

새 신발을 산다는 건

닳게 해야 할 바닥이 남았다는 것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먹이던 유년의 맨발에

유행 지난 멀쩡한 구두 한 벌

버리기 전 헐겹게 신겨보며

 

몇 켤레쯤 여벌을 가진 생을 떠올려 본다 .

 

<시와 시학> 2008년 봄호.

 

 


 

김유석 시인

1960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전북대학 문리대를 졸업.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신월기계화단지〉가 당선되어 등단.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으로 『상처에 대하여』 『놀이의 방식』 『붉음이 제 몸을 휜다』가 있음. 2015년 제5회 웹진 『시인광장』 시작품상 수상.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