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 시인 / 봄눈 외 1편
김유석 시인 / 봄눈
어미와 새끼 중 하나를 택하라는 말에 어미를 살렸다
난산難産끝, 가쁜 어미의 숨결과 스르르 닫히는 송아지 눈꺼풀 사이
망설이듯 내리는 눈
수의사도 내 귀에도 안트이고 어머의 몸에만 배냇짓처럼 얹히는 눈
저절로 녹아 물기만 남기는 그것을
어미는, 울음으로 꺼낼 수 없었다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2. 3월호
김유석 시인 / 버려지는 신발들은 슬프다
사람들은 왜 신발을 벗어 두고 가는 걸까 그게 슬펐다, 그 어떤 유서보다 물가에 가지런히 놓인 구두 한 켤레
어느 헐거운 길이 거기까지 따라와서 맨발이 되었을까
문단속을 하는 대신 토방에 신발을 반듯이 올려놓고 집 비우던 아버지 삼우제 날 문밖에 내어 태우던 부르튼 발바닥들이 슬펐다
그래서일까 유령들은 대부분 발을 감춘다
신발을 신고 있다는 건 어디쯤의 고단한 이정(里程) 새 신발을 산다는 건 닳게 해야 할 바닥이 남았다는 것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먹이던 유년의 맨발에 유행 지난 멀쩡한 구두 한 벌 버리기 전 헐겹게 신겨보며
몇 켤레쯤 여벌을 가진 생을 떠올려 본다 .
<시와 시학> 200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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