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봉학 시인 / 일월오봉도 외 1편
황봉학 시인 / 일월오봉도 日月五奉圖
하늘을 다 담고 땅을 다 담아도 사람이 없으면 완성되지 못한 그림 태조 이성계의 일월오봉도를 생각한다
마지막 서정을 남기고 떠난 시인이 하늘과 땅이 맞닿은 태백산맥 어느 산마루에 너와집을 짓고 살고 있다 한다
'너와집' '너와 집'하고 되씹다 보니 '집의 마지막은 사람으로 완성된다'는 어느 건축가의 말이 생각난다
미스터리한 기둥과 난해한 서까래를 걸친 시(詩)의 집이 유행한 적 있다 해독할 수 없는 자물쇠를 열지 못해 사람들이 떠났다 한다
서정을 그리워하는 시인이 짓고 사는 '너와 집' 하늘을 보고 땅을 밟으며 사람이 먼저인 '일월오봉도' 같은 '시집' 한 채 짓고 싶다
황봉학 시인 / 텅 빈 구유
가을님 보시게.
겨울이 제법 깊었네. 자네랑 이별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자네랑 헤어지면서 꼭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네만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라 금방 겨울과 정이 들었지 뭔가. 자네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흰 눈 한 줌 뿌릴 수 없다고, 눈이 그리우면 자네를 버리고 가도 좋다고 했었네. 그런데 겨울에 와서 보니 자네를 떠나올 때 챙겨준 빨간 단풍잎 서너 장, 노란 은행잎 두세 장, 늙은 생강잎 한두 장, 흰 눈이 내리면 난로 가에서 우려먹으라며 준 구절초 몇 잎이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몰라.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네.
내가 자네를 다시 그리워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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