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라 시인 / 캄보디아 외 1편
박유라 시인 / 캄보디아
허물어진 사원 지붕 없는 탑 속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이 우물처럼 연둣빛 나뭇가지를 띄워놓고 있네 탑신에 기대어 자라던 나무가 바람 위에 한쪽 팔을 올려놓고 오래 잊은 것
한없는 투명에 잠긴 붓다의 손가락
시간은 곤끝에서 풀려나가 하늘 아래 먼 변방까지 햇살 넓은 오후를 펼치고 긴 그림자를 던지고 있네
먼 먼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발자국 지금은 내가 나귀처럼 고요에 기대어 서있는 시간
박유라 시인 / 르네 마그리트*
바다가 잘려 있다 제가 그림인 줄도 모르면서 오리는 그림 밖 무한천공으로 눈을 뜨고
한 겹 바다 밖에서 한 쪽 손목이 오리 앞에 낙관을 찍는다 오리는 낙관을 모르고 낙관은 손목을 모르고
밖을 스쳐가는 낡은 풍경들 주소를 찾아가는 그림엽서처럼 혼자서 먼 길 자맥질해 가던 것들이 한 장 백지 위를 지나려는 순간 미동도 없이 벽에 딱 멈춰 선 그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순간을 펴 늘여 무한이 되고 만 그것을 무어라 이름 불러야 할까
허공보다 깊이 눈 뜨고 싶어 허공보다 크게 눈 뜨고 싶어 저를 그리는 손목이 보일 때까지 손목을 흔드는 바람이 보일 때까지
나는 잘려진 바다 앞에 서 있고 서 있는 나를 보는 화실 밖 큰 눈을 모르고
* 르네 마그리트 (1898-1967) :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는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해 그림을 배웠으며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1926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면서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살바도르 달리와 호안 미로, 그리고 시인 폴 엘뤼아르 등과 교류하였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는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는 달리 초현실주의적인 시적 (詩的) 영감과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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