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박규리 시인 / 굽은 화초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0. 16. 05:00

박규리 시인 / 굽은 화초

 

 

베란다 화초들이

일제히 창을 향해 잎 뻗치고 있다

그늘에 갇혀서도 악착같이 한쪽을 향하고 있다

 

바라는것 오직 한가지인 생활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눈이 없어도 분별해내는 밝음과 어두움

 

단단한 줄기 상처로 굽힐 줄 아는 마음

 

등 굽은 화초, 휘어진 마디마디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고집 배어 있다

 

 


 

 

박규리 시인 / 갓꽃 피기 전에

 

 

그대는 내 새끼다 내 속으로 낳아, 피 묻은 탯줄 내 이로 끊은, 끝없는 절망 끝에서 뒹굴다 뒹굴다 내가 품은 넋이다 서러운 사랑이다 고양이처럼 울부짖으며 쏟아낸 빛나는 어둠이다 가라 그대는 가라 맨발로 갓꽃 피기 전에. 골백번 혀를 깨물어도 내 그대를 사랑한 적 없으니 죽어도 죽어도 허리춤에 다시 꿸 핏덩어리, 내 새끼야 갓꽃 필라, 어여 어여

 

 


 

박규리 시인

1960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을 수료. 1995년 ≪민족예술≫에 <가구를 옮기다가>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2004. 첫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