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선 시인 / 설악운雪嶽韻 외 3편
이성선 시인 / 설악운雪嶽韻
神의 힘 가득한 雪嶽 큰 병풍 속으로 어느 날 휘적휘적 혼자 걸어 들어가는 이
들어간 후 몸이 보이지 않는 이
영봉靈峰에 구름으로 일어나고 골짜기 바람으로 물소리로 섞여 몸은 이미 버린 이 자유로운 이
가끔 새소리 속에 그의 말소리가 섞여 들리고 저녁 하늘에 그의 발자취가 보이고 밤의 물속에 별로 흩어져 깔린
보이지 않는 이 그러나 모든 곳에 보이는 이
영혼은 살 갈피에 숨어 뻐꾹이로 우는가 흐르다 고여 산 목련으로 피어나고 하늘을 지붕 삼고 떠돌다가 바위로 굳어 미소하는
산 열고 산 안에 고요로 앉아 눈물로 앉아 몸 다 비우고
어두운 어느 저녁, 산을 나오는 이 바닷가에 앉아 발을 씻는 이
이슥한 밤 달로 떠올라 허공을 걸어가는 그 발이 환히 빛나는 이
-1979년 「몸은 지상에 묶여도」
이성선 시인 / 별을 지켜 선 밤
나무 곁에서 별을 바라보면 내 몸에서 소리가 난다.
하늘의 물방울 음악이 들린다.
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 사람은 안다. 볕이 가득한 나무 아래 서면
나뭇가지 실핏줄을 타고 숨소리 죽여 흘러내리는 별들의 하얀 강물 줄기.
내 몸까지 젖어 번쩍이는 저 우주의 물빛.
나무 아래에서 샘물을 마시면 내 영혼에 날개가 돋아난다.
나는 이미 하늘의 악기가 된다.
죽음 가까이 맑게 깨어 부르는 노래가 저승까지 흐른다.
내가 잠시 잠이 들어도 위대한 이는 내 안에 돌아와
강물로 별을 목욕시키며 소름 끼치는 물방울 향기 튕기어 가난한 날개를 씻는다.
-1985년 「나의 나무가 너의 나무에게」
이성선 시인 / 시간을 쓸어 내며
백지 앞에 시간을 쓸어 내며 시를 쓴다.
터진 영혼의 솔기를 거의 다 꿰매고 이제 마지막 점 하나 어디에 찍을까 망설이다 창밖에 눈을 준다.
흰 눈 쌓인 설악 산정에 西山이 돌아와 누워 내 모습에 크게 웃는다.
옷 한 벌 밥 한 끼로 금강산에도 두류산에도 높이 누워 놀았거니
이놈아, 대장부가 조사나 부처를 깨뜨리지 못하고 어찌 살아남기 바라느냐.
일갈에 번쩍 정신 차려 붓으로 시의 이마를 내려치니
백지 위에 맑은 솔바람 소리 한 줄
-1990년 「시간의 샘물」
이성선 시인 / 미시령 노을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2000년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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