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양희 시인 / 문지른다

파스칼바이런 2022. 10. 27. 05:00

양희 시인 / 문지른다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나보다 먼저 누워 있던 남편의 발에 차가운 내 발을 갖다 댄다 아아 따뜻해 그 바람에 남편은 잠이 설핏 깼지만 짜증 안내고 뭉툭한 발 사이에 작은 내 발을 끼워 넣고 문질러 준다

 

 은서야 등 좀 밀어주렴 여덟 살 딸을 욕실 안으로 불러들여 거품솔을 내어준다 딸이 우리아이 첫 그림 지도책 표지 같은 엄마의 네모난 등을 박박 문질러 준다

 

 한번만 안자 한번만 하자 네 속에 들어가 있는 힘 다해 문질러 줄께 그러니까 너는 아직도 응큼남이야 바람둥이야 아니야 그게 그거라니까 그게 바로 사랑이라니까 너는 여태 그것도 몰랐니

 

 검정고무 속에 감추어진 없는 다리를 끌며 쑤세미와 좀약이 실린 납작한 좌판을 사람들 사이로 밀고 가고 있는 저 아저씨 질퍽한 시장 길바닥을 하루종일 온몸으로 문지르고 있다

 

 


 

양희 시인(본명: 梁銀英)

1969년 경기 화성 출생. 1996년 <문학정신> 등단. 대구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