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원동우 시인 / 창혼唱魂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0. 28. 05:00

원동우 시인 / 창혼唱魂

 

 

어쩔 길 없이 나무는 꽃을 밀어낸다

더 갈 데 없는 가지 끝에 꽃들은 피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낭떠러지에 매달린 어린것들

갓 태어나 어여쁠 때 지는 것이 목메어

바람조차 꽃잎을 건드리지 못한다

 

나무 밑을 지나다 걸음을 멈춘 비구니가

꽃그늘을 올려다본다 그 얼굴 위로

떨면서 자꾸만 떨면서 꽃들은 몸을 던진다

잔주름이 가득한 비구니 눈가에 눈물인지

독경인지 반짝이는 봄이 흘러내린다

 

- 『불교문예 2017-봄호

 

 


 

 

원동우 시인 / 적멸寂滅

 

 

 개화병이 돈다고 흉흉하던 시절, 개암나무 울창한 낮은 개울에서 탁발 돌던 늙은 중이 고무신 벗어 물을 떠 마시곤 했는데 한번은 버들치 한 마리가 담겨 나왔더란다. 아무 걱정 없이 헤엄치는 물고기를 받쳐 들고 극락이 따로 없구나. 붉은 얼굴 땡추가 자꾸만 중얼거리더란다, 무위 적정, 무위적정

 

 심마니들이나 가끔 지날 숲길에 보살 하나 들어서는데, 대나무가 모두 말라 죽어 가렸던 초막이 지붕을 드러냈단다 문을 두드렸으나 인적은 없고 조고각하 문틀 아래 벗어놓은 고무신 한 쌍, 거기 꽃잎들이 가득 담겨 있더란다. 미간 밝은 보살이 고무신을 향해 합장하며 몸을 굽히더란다. 부처님께 그러듯 일어날 줄 모르더란다.

 

 


 

원동우 시인

1963년 경기 가평 출생. (원명: 원동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등단. 대학졸업 후 은행에 입사하여 10년 정도 근무하다가, 퇴사한 뒤에는 벤처기업을 운영하다가 정리하고 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