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서 시인 / 멍나무 외 2편
유현서 시인 / 멍나무
나는 당신을 멍나무라 부른다
멍이 없으면 이 세상 아픈 말씀들 갈곳이 없어진다 구멍구멍 희푸르게 앓는다 내가 뱉어낸 상처투성이의 말들이, 당신이 절벽처럼 응수한 비수匕首 품은 말들이 허공으로 솟구치다 안착하는 곳
그에게 수신되지 않고 당신에게 송신되어 곧바로 순해지는, 덕지덕지 꿰맨 상처
비틀거리는 노숙자도 지겟작대기 부러져라 두들겨 맞던 망아지도 수놈들의 발정에 불붙이던 분녀의 질퍽한 욕지거리도 넥타이의 주먹감자도 앳된 며느리의 눈물방울도
오지게 품고 나서야 비로소 완벽해지는 당신,
갈 곳 없는,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나 떠돌 말들이 붕붕-, 시퍼런 이파리로 환생하는 나의 플라타너스!
깊은 멍을 가진 사람만이 머물게 만든다 그의 그늘이 만평이다
유현서 시인 / 물초
중심을 받쳐주던 파라핀의 기억들이 꽃잎처럼 앏아진다 약한 입김에도 꺼질 듯 밀렸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띠 동갑의 그 여자가 내 남자와 헤어지라고 말한다 수컷만 남은 굴레를 강요하지 말라고 한다
뜨겁게 달궈진다는 건 빙점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그걸 몰랐던 어리석은 화상火傷의 시간들이 출렁댄다
소문은 늘 마지막에 들려온다
바람의 칼끝으로 너를 건드려 본다 촛농처럼 눈물이 절로 흘러내린다
환하게 밝히던 양초는 단단했던 제 몸을 기억이나 할까 그가 있던 자리에 맑은 고름이 그득하다
유현서 시인 / 못이 박히다
박힌다는 것은 수인囚人이 된다는 것이다 무기징역 이상의 범법자가 된다는 것이다 벌건 눈물 흥건히 고인 쟁반바위가 된다는 것이다 아니다 핏덩이로 생살에 박힌 철천지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사각의 무덤 속에 벽 하나 갖는다는 것이다 찔레꽃 덤불 속에서 입가에 하얀 꽃을 피우던 어린 오라버니, 못이 되어 하늘에 박혔다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았다 평생을 빼내려 해도 빼내지 못하는 못이 있다 사람이 못이 될 때 가장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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