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윤제림 시인 / 매미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0. 31. 05:00

윤제림 시인 / 매미

 

 

내가 죽었다는데, 매미가 제일 오래 울었다

 

귀신도 못되고, 그냥 허깨비로

구름장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니

매미만 쉬지 않고 울었다

 

대체 누굴까,

내가 죽었다는데 매미 홀로 울었다,

저도 따라 죽는다고 울었다

 

 


 

 

윤제림 시인 / 백담계곡을 내려오며

 

 

1.

 

꼬리를 치며 따라붙는 여자

너 잘 걸렸다, 불알 밑에 힘을 돋우며

손목도 잡아보고, 쓸어안아도

가만있는 여자.

입에는 샛하얀 거품을 물고 쉴새없이 재깔이며

눈웃음도 치며

속치마도 잠깐 잠깐 내보이며

산길 이십 리를 같이 걸어내려온 여자.

 

2.

 

인간의 여자라면 마을길 이십 리쯤 더 내려왔을 텐데요.

그 여자는 한 걸음도 더는 따라오지 않습니다요, 못된 년, 망할 년 욕이나 다 나왔지만요. 내 탓이지요 뭐. 그녀의 말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으니까요. 말도 안 통하는 사내 따라 나설 계집이 어디 있겠어요. 말귀만 좀 통했으면 집에까지 데려올 수도 있었을 텐데요.

 

 


 

윤제림 시인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인천에서 성장.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87년 《문예중앙》에 「뿌리 깊은 별들을 위하여」외 9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중. 21세기 전망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