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조온윤 시인 / 묵시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0. 31. 05:00

조온윤 시인 / 묵시

 

내가

창가에 앉아 있는 날씨의 하얀 털을

한 손으로만 쓰다듬는 사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섯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다시

다섯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왼손과 오른손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밥 먹는 법을 배운 건 오른손이 전부였으나

밥을 먹는 동안 조용히

무릎을 감싸고 있는 왼손에게도

식전의 기도는 중요합니다

 

사교적인 사람들과 식사 자리에 둘러앉아

뙤약볕 같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도

침묵의 몫입니다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

 

밥을 먹다가

왜 그렇게 말이 없냐고

말을 걸어오면

말이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다

말이 없어집니다

 

다섯개의 손톱이 웃는 모양이라서

다섯개의 손톱도 웃는 모양이라서

나는 그저 가지런히 열을 세며 있고 싶습니다

 

말을 아끼기에는

나는 말이 너무 없어서

사랑받는 말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햇볓이 한줌 엎질러져 있어

 

커튼을 쳐서 닦아내려다

두 손을 컵처럼 만들어 햇볓을 담아봅니다

 

이건 사랑받는 말일까요

하지만 투명한 장갑이라도 낀 것처럼

따스해지기만 할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침묵을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 곁에 찾아와

조용히 앉아만 있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나의 왼손입니다

 

 


 

 

조온윤 시인 / 중심 잡기

 

 

천사는 언제나 맨발이라서

젖은 땅에는 함부로 발을 딛지 않는다

추운 겨울에는 특히 더

 

그렇게 믿었던 나는 찬 돌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언 땅 위를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골몰했다

 

매일 빠짐없이 햇볕 쬐기

근면하고 성실하기

버스에 승자할 땐 기사님께 인사를 하고

걸을 땐 벨을 누르지 않아도 열리는 마음이 되며

 

도무지 인간적이지 않은 감정으로

인간을 위할 줄도 아는 것

 

자기희생

거기까지 가닿을 순 없더라도

 

내가 믿는 신이

넘어지는 나를 붙잡아줄 것처럼

눈 감고 길 걸어보기

헛디디게 되더라도

누구의 탓이라고도 생각 않기.......

 

그런데

새벽에 비가 왔었나요?

 

눈을 떠보니 곁에는 낯선 사람들이 있고

겨드랑이가 따뜻했던 이유는

그들의 손이 거기 있었기 때문

 

나는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랜 동면 끝에 지구로 돌아온

우주비행사처럼 묻는다

 

광적응이 덜 끝난 두 눈에

표정은 안 보이고

고개만 휘휘 젓는다

 

가끔씩

나는 나의 고도고 헷갈리고

 

사람들도 몰래

사람들의 발이

젖어 있곤 했다

 

 


 

조온윤(曺溫潤) 시인

1993년 광주에서 출생.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되며 작품활동 시작. 문학 동인 〈공통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