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정채원 시인 / 얼룩무늬 화물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6. 05:00
정채원 시인 / 얼룩무늬 화물
지푸라기로 가득한 인형의 가슴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강철 스프링처럼 화물상자는 개봉되는 순간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해석도 넘어서는 외부는 간결하다
빗속에 번들거리며 얼룩이 부풀어오르는 그 포장은 어딘가에서 잿빛으로 혹은 붉은 빛으로 표정을 바꿀지도 모른다 가장 불행한 시기에 가장 익살스러운 극본을 쓴 작가가 있다
쓰다 만 명세서와 거친 매듭으로 봉인된 상자 속 이름을 알 수 없는 짐승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지 이따금 등 뒤가 들썩거린다 벽을 긁는 소리도 들린다
뼈마디 쑤시는 독감을 앓고 난 다음날, 혹은 오래도록 사랑하던 누군가를 갑자기 떠나보낸 뒤 천천히 한쪽 얼굴을 지우는 연습을 하는 저녁 달리는 화물의 무게가 조금 달라진다
우리 안을 서성거리는 울음소리 머지않아 당도할 목적지를 예감하며 눈을 감았다 주먹을 쥐었다 하고 있다 철저히 보호된 고독 속에서 한 생을 마쳐야 할 멸종위기의 짐승처럼
어둠이 만지고 간 것은 믿을 수 없다
정채원 시인 / 비몽 & 사몽
바늘꽃 사이로 사람이 지나간다, 개가 지나간다
여기는 누구의 꿈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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