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녀 시인 / 이상한 베란다 외 2편
최금녀 시인 / 이상한 베란다
내게는 베란다가 있다 컵에 술을 채우고 물처럼 마셔도 취하지 않는 베란다가 있다 아직 시를 써요? 배란다가 내게 물었다 주머니에 두손을 넣고 볼펜을 사고 산책을 하는 나에게 누가이곳에 의자를 놓았어 멀리 온 것은 좋은 일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의자에 앉았다 매달릴 수 없는 베란다 구름만 보이는 베란다 유리컵에 술을 채우고 가는 베란다 술을 물처럼 마셔도 취하지 않는 베란다 그 베란다가 내게 물었다 아직 시를 써요? 질문보다 높은 곳에 있는 나의 베란다
-월간 『월간문학』 2020년 6월호 발표
최금녀 시인 / 불광동
불광동은 새로 산 신발처럼 불편하고 조금씩 헐거워지고 봄에도 눈이 질퍽거렸다
발이 아플 때마다 마음이 아플 때마다 눈이 내렸다 발이 아픈 곳에서 눈이 다시 시작됐다 미끄러지는 발을 자주 씻었다
생각은 밤거리에 있었고 내 발은 눈 속에서 얼었다
불광동에서 나는 사랑 시를 썼다 녹는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미끄러진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톱날 같은 신발을 바꿔 신는다
눈 속에 떨어진 신문을 안고 계단을 밟아 올라오는 그의 새벽 발걸음이 미끄럽다
이 세상의 모든 염화칼슘은 눈보다 먼저 녹는다
최금녀 시인 / 날짜변경선
새우 요리에서 바다냄새가 나지 않았어요 새들 때문인가 봐요 베란다에서 바닥을 찍어 먹던 새들이 서쪽으로 갔어요 바다와의 사랑이겠지요
개망초꽃 향기가 생각났어요 사람들을 따라 샌들을 신고 개망초꽃 밭을 돌아다녔어요 개망초꽃도 괜찮구나 생각했어요
섬의 나무들이 자꾸 불행해 보였어요. 나무들이 뿌리 사이에 남은 모래알을 계산하고 있었어요. 떠나는 아침, 남은 사랑을 나무들에게 부어주었어요 구름이 길게 자라겠지요.
날짜변경선을 넘고 있어요.
-시집 『기둥들은 모두 새가 되었다』(현대시, 2022)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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