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경후 시인 / 토르소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8. 05:00

김경후 시인 / 토르소

 

 

텅 빈 카페 선반 위

토르소

누군가를 기다리며 한나절

기다리지 않기로 한 뒤

또 한나절

허벅지와 미소

울부짖음과 발바닥

있어서 안 되는 건 이미 모두

없다

더이상 잃을 것도 없다

그것뿐

벌건 할로겐 램프 아래

벌거벗은

토르소

잊기의

기억

 

 


 

 

김경후 시인 / 단풍

 

 

눈 먼 새들

열린다

날개 묶여

열린다

핏빛으로 떨어진다 열린 채

얼어붙은 채

엄마, 떨어지면 날아가?

가을 하늘은 멀고 높다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열리고

닫힌다

내가 스마트폰을 찾는 사이

열차

날아갈 듯 핏빛 눈빛들

 

 


 

김경후 시인

1971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독문과 졸업. 명지대 문창과 박사과정 수료.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 『열두 겹의 자정』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 『어느 새벽, 나는 리어왕이었지』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 가 있음. 현대문학상, 김현문학패를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