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정 시인 / 너머 외 1편
임재정 시인 / 너머
여기에는 없이 눈을 감는다 눈앞이 어두워지면 다른 곳이 환해지는 풍선은 이미 아는지, 누르면 어디로든 부푼다 엄마가 희망하는 미래의 아이들처럼, 과거의 자신이 핑계처럼 불거져 집으로 가고 있다 함께하는 이웃이면서 모르는 사람들, 들킬까 자주 눈을 감는다 아이가 들고 있는 풍선 속으로 시간이 쌓인다 조금씩 무거워지던 풍선이 덜컥 무서워질 때까지 어른이란다 눈을 맞추고 말해야 하는데 이것은 임마가 모르는 풍선 환영 허수아비 영혼 도깨비 귀신보다 내가 더 무서워 눈을 감는다 내게 풍선이 들려 있다 두려움 없는 좀비처럼 이쪽을 누르면 저쪽으로 불거져 풍선 안을 뛰노는 미래를 모르는 척 바라본다 얼룩진 낮은 함부로 세탁할 수 없는 밤이 될 것이다 비눗방울이 떠다니는 꿈에 눈꺼풀 속 한곳만 환해질까 봐 다시 눈을 뜨고 걷는다, 감지도 뜨지도 않은 중간이란 없어서 오늘을 끝내려고 시계를 만든 사람을 떠올렸다
임재정 시인 / 뜨게질의 서사
1. 내내 웅크리고 뜨개질만 하는 여사의 레퍼토리는 뻔합니다 등뼈를 뽑아 지붕을 뜨고 꼬리를 펴서 굴뚝을 세운 언덕 위 단칸방이었을 테죠 다락방에선 별을 딸 수도 있었을까요 충혈 되던 어제의 기억도 저녁연기도 눈에 든 풍경도 눈꺼풀 속에 가두어 삭혔다가 근경으로부터 원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아 뜨개질에 우겨 넣었을까요
2. 실이 부족한 겨울도 있답니다 눈물샘을 자극하죠 뱃가죽마저 바늘에 거는 여사가 있으니까요 몸이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아궁이 앞에서 툇마루에서 가물거리는 등불 아래서 등의 줄무늬까지 죄 꾀어 손가락 사이로 밀어 넣고는 했답니다
3. 말썽꾸러기 털실뭉치 일당도 등장하죠 작위적이라구요? 또르르 굴러가 온 동네를 휘젓던 녀석들을 뒤쫓느라 여사는 그날 분량의 한 뼘을 덧대기도 벅찼더랍니다 선홍의 아궁이 밥 물 넘는 소리에나 또렷해지던 녀석들, 턱 괴고 넘겨다보던 시선이 부엌을 환히 밝힐 만큼 이었는데요 두 바늘로 타닥타닥 걷는 옹색한 아궁이의 꿈이 솥뚜껑을 들썩이게도 했을 테죠
여사는 내심 뿌듯했던 모양입니다 그 밤 뽀득빠득 걸어든 흰 도둑떼들이 온 세상을 지워버려도 여사의 대바늘은 아침 골목어귀까지 다시 뜨곤 했습니다 도둑들이 버리고 간 솜옷 소매에서 무럭무럭 봄이 쏟아져 나올 때까지 녀석들 발목만은 안녕 했습니다
뜨개질은 사실 여사의 뜨거운 입김을 빼면 아무 것도 없는 이야기 사족이지만 뺄 수 없습니다.
더딘 여사의 뜨개질에 코가 펜 당신들이니 말입니다만 마술은 끊임없이 달아나는 털실뭉치를 누군가가 대바늘에 거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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