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시인 / 벽 속의 여자 외 1편
김명서 시인 / 벽 속의 여자
봄에는 죽은 나무도 몸을 일으킨다
어두운 숲 그늘처럼 차고 습한 몸 겹겹이 수의를 입은 듯 눕는다 눕는다는 것은 절규마저 잠재운다는 것이다
새벽의 박명을 꽝꽝 못질하는 신음소리 비애로 쌓이면 툭툭 모세혈관 터진 그 자리에 시퍼런 무늬로 음각되는 멍
진통제는 질 나쁜 비유처럼 아무것도 채우지도 품지도 못한다 헛되이 눈부신 통증만 키웠다 통증의 잔뿌리들이 아스포델로스같이 몸의 진액을 빨아들인다
얇아진 몸, 휘청 숲의 윤곽이 흐릿해진다 심호흡을 한다
절망조차 사치였던 것이다
김명서 시인 / 그림자나비
유리동굴 밖이 우주 끝이다 절대 나가지 마라 모친의 유언 뼛속을 파고든다 컴퓨터와 회전목마를 들여놓고 빗장을 닫는다
이끼 핀 천장에 불치의 고독이 종유석처럼 자라고 있다
자신의 그림자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망루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라"는 유리벽에 돋을 새김 된 메아리를 지우는 사이 불혹에 걸렸다
어느 인류학자는 '종의 기원'은 오류투성이라며 머지않아 인간이 로봇과 이종교배를 할 것이라는 '유엔미래보고서'를 발설하고 정부에 대한 믿음의 비를 백분율로 나타내는데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세상은 극점을 연출하는지 외계인을 닮은 영장류들 가늘고 긴 다리에 붙은 빨판을 상대의 가슴에 대고 단숨에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각자 뇌의 질량과 부피가 다른 탓에 그 용량만큼 소화하고 저장한다 누구나 만족한 낯빛이다
일부는 옛것이 그리워서 남루한 기억도 사고팔고 일부는 우량유전자를 밀매하고 있다
저 불쌍한 것들을 구해야겠다고 막 직립보행을 시작하려는 그를 철컥, 굴착기가 수거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