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선 시인 / 부흥회 외 1편
이명선 시인 / 부흥회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지 않더라도 농담을 진담처럼 진담을 농담처럼 받아주는 네가 모퉁이 집에 아직 살 것 같고 구하려는 문이 달라 교회 앞 절반은 절벽일 것 같고 너에게 일어난 일이 내게도 일어날 것 같아 도벽이 도지는 날이면 낙석을 보러 갔다
상처 많은데 손을 잡고 여름성경학교에 가는 길목에는 체험할 것도 많았고 어미 개가 빈 젖을 덜컹이며 어슬렁거리는 공터에는 심령부흥회 현수막과 대형 솥단지가 걸려 있어
기대에 부응해 갈 때
비로소 모두의 형제요 자매가 되는 신천지에서 너와 내가 알고 있는 우리의 비극이 우리인 것처럼 일찍부터 단상에 오른 어느 형제의 간증이 밖으로만 새나가 모인 사람 절반은 독신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간증을 맹목적으로 맹신하고 싶어졌고 개가 어둠 깊숙이 신을 물어다 놓는 동안 찾을 수없는 신神이 수두룩해 개가 어두워지고 방에 둘러 앉은 우리가 한때 단란한 가족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믿음과 가족은 체념할 것이 많았다.
-시집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버릇>에서
이명선 시인 /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버릇
내려다 볼 수 있는 미래는 더 먼 미래로 가야 볼 수 있을까 말린 과일을 접시에 담으며 먼저 늙겠다는 네가 어느 순간 늙어 시계가 걸린 벽을 바라보았다 너의 테 없는 안경을 쓰고 양 떼가 이동 중인 초원을 거닐 수 있다면 움트는 새벽을 맞게 될지도 몰라 그간의 일에 슬픔이 빠지고
사람의 손을 네가 먼저 덥석 잡아 줄 리 없으니 내가 아는 너와 지금의 너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다시 너에게 오는 사람이 지금의 너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살갑게 네가 올려다볼 세상을 상상하면서 조금 더 늙어 버려 식탁에 앉아 말린 과일을 놓고 생애주기가 다른 바다생물 이야기에 벌써 눈부신 멸망을 본 듯 말하고 있다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버릇을 우린 아직 버리지 못해서
-시집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버릇>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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