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신명옥 시인 / 도토리진법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14. 05:00

신명옥 시인 / 도토리진법

 

 

홀리는 순간 발은 공원 숲으로 들어가고 눈은 바닥을 더듬는다

 

숲에 깔리는 진형, 굽신거리며 하나씩 부수어야 벗어난다

 

갈색으로 빛나는 결정체, 높은 곳에서 떨어진 구슬, 암호가 적힌 쪽지

 

이 포진은 간격이 일정치 않다, 정해진 노선이 없다, 몰입해야 보인다

 

경단으로 탑을 쌓는 동안 환해지는 눈빛, 올라가는 입꼬리, 넉넉해진 호흡으로

 

동그라미와 노는 아이, 탄성으로 차오르는 풍선, 회복되는 별자리

 

나무가 보고 있을까, 제 분신들과 무아경에 든 다람쥐

 

- 월간 《현대시 2022년 3월호에서 -

 

 


 

 

신명옥 시인 / 플라스틱 탄알

 

 

내 영혼이 총에 맞았다

언어의 밀렵꾼들이 총으로 쏘고 간 뒤 쓰러진 나는 깨어날 줄 모른다

퇴락한 사원의 기둥 같은 나무 돌며 生과 死의 틈에 정지된 영역을 들여다본다

엷은 햇살이 숲에 떨어진 탄알을 비춘다

눈이 쌓이고 녹는 동안 숲 속에서 오색으로 빛나는 탄알들

 

고공을 향하여 산딸나무 가지 딛고 오르던 나는

빨강, 노랑, 초록, 색색의 탄알 속에 감추어진

아수라계, 인간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를 맴돈다

수억 만개의 별들을 품고도 끄떡없는 하늘은 고요하기만 하다

 

돌풍이 낙엽을 몰고 와서 숲에 흩어진 탄알을 묻어버릴 때까지

숲을 돌며 내 안에 고인 어둠을 쓸어낸다

투명한 햇살이 내려와 생각에 잠긴 눈동자를 두드린다

나는 창공을 날아가는 매에게 마음을 얹는다

언어의 날개를 빌려 탑을 쌓은 후 쓰러진 시의 숲을 일으켜 세운다

 

 


 

신명옥 시인

1962년 전북 군산 출생. 강원도 강릉에서 성장. 강릉교대 및 상명사대 국어교육과 졸업. 2006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 <해저 스크린>. 2017년 세종우수도서 선정. 청소년시집 <달빛에 말린 그리움>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