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린아 시인 / 엄마의 지붕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14. 05:00

이린아 시인 / 엄마의 지붕

 

 

엄마는 죽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꼭 하늘을 쳐다봤어요

 

대답할 것이 너무 많아

막막한 지붕들은 무거워요

 

구멍 난 지붕을 막기 위해 기와공 아저씨가 찾아왔어요

아저씨의 턱수염은 지붕 밑을 받치느라 늘 꼬불꼬불하지요

 

아저씨가 다녀간 날이면

엄마에게도 꼬불꼬불한 털이 있어요

엄마는 올 여름엔 비가 많이 내릴 거라며

뒤뜰에 모아둔 조각 몇 개를 가리켰지요

기와를 받아든 아저씨는 내게

좋은 날씨에 태어났다고 말해주었지만

그건 지붕 속으로 들어가 버린 엄마의 날씨일까요?

 

조각마다 날짜를 적어 두었어요

바람이 불어 치마를 입었거나

날이 맑아 엄마가 말을 걸지 않았던 날짜들 말이에요

 

더 이상 날짜를 새길 조각들이 없을 땐

잔디는 꽃 밑에 숨고 내 발자국들은 잔디 밑에 숨어요

 

뼈대만 남은 나무들은

문도 벽도 없이 지붕을 만들기 시작한 걸까요?

 

아저씨는 우리 마을에 있는 모든 지붕에 올라가 본

유일한 사람이지요

지붕을 만든 아저씨는 엄마보다 물어볼 게 많아졌을 거예요

 

 


 

 

이린아 시인 / 영장류처럼 긴 팔을 사랑해

 

 

악수握手의 길이는 긴 팔이 알고 있을 거야

넌 등을 만지는 방법을 알고 있니?

 

너의 팔은 점점 자랄 텐데

그 팔을 늘리려면 끊임없이 경계해야만 해

온기가 말초에 다다를수록

검붉은 목 젓이 오르락 내리락

길어지고 빨개진 너의 목을 안고

 

자, 이제 꼬리를 잘랐으니

너의 팔이 툭! 하고 날 치면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높여 회개할거야

내 죄를 사해달라고

지난 밤 팔이 늘어난 영장류들이

넓적한 맨홀 뚜껑에 이마를 박고

둥그런 가장자리를 물씬 두들겼어

아마 급하게 손끝을 구부려 버렸나봐

 

내 손이 닿은 너의 등뼈는

펑펑 울고 있겠지

 

버드나무와 용감한 늪과

넓은 모래밭이 있는 곳으로 가자

조개와 물새와 잇새가

부푼 내 뱃속을 휘저으면

한껏 불어난 날개가 너의 팔이라고 착각할게

 

모래가 저희들 사이로 몸을 숨기듯

긴 팔을 한걸음 떼고 있겠지

너의 척추가 하나 둘 벌어지는 순간으로

팔꿈치를 구겨 넣을 거야

 

 


 

이린아(李璘妸) 시인

1988년 서울 출생. 명지대학교 뮤지컬공연전공 졸업. 명지대학교 대학원 뮤지컬공연학 석사 졸업.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