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려원 시인 / 돌 속의 사과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15. 05:00

려원 시인 / 돌 속의 사과

 

 

꽃이 몸을 피웠어

 

사과를 먹다가 뱉은 씨

 

몸 속에 단단한 증표로 박혔지

 

씨의 연애법 난 그런 거 몰라

 

치렁치렁 잘 엮여가는

 

사랑

 

그까짓 거 바깥으로 차 버리면 되지?

 

망설이는 동안

 

붉음을 꿈꾸는 시간이 왔어

 

쪼개보면 오래 묵은

 

 

하얀 돌부리 위에

 

적어놓은 그 말 난 아직도 몰라

 

 

떨어진다 몸의 바닥으로

 

-시집 <그 해 내 몸은 바람꽃을 피웠다>에서

 

 


 

 

려원 시인 / 윙컷

 

 

새는 제 허공을 잃어버렸다

 

- 계집애가 가방끈만 길면 뭐해!

아버지 말씀이 내 귀때기를 때렸다

 

나는 나와 수십장의 상장을

감나무 밑에 묻었다

여러 날 귀때기에서 바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미역을 잡히는 대로 뜯었다

저울의 무게가 올라 갈수록 몸에 피어오르던

소금꽃

 

퐁퐁을 풀어 수십 번 미역냄새를 씻어도

내 몸에서 절망냄새가 났다

 

불쏘시개로 던져놓은 오빠 책을 감추어두고

오빠의 지문 위에 내 검지를 꾹꾹 눌렀다

 

사각사각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자

 

-시집 <꽃들이 꺼지는 순간>에서

 

 


 

려원 시인

1977년 생. 2015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한때 원통고등학교 국어교사. 전 아동복지시설 주말 프로그램 문학강사. 전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문학강사. 현 탁틴학원 국어 논술 전문연구소 원장. 시집으로 『꽃들이 꺼지는 순간』 『그 해 내 몸은 바람꽃을 피웠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