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홍정순 시인 / 못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17. 05:00
홍정순 시인 / 못
때론 목수의 손길을 원망도 했지 고단한 운명의 장난이라 푸념도 했지 온전히 고정된 그날을 위해 고통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뿌리를 내릴 때까지 현실과 이상에 머리와 몸을 박고 꿈꾸며 살아야해 절망하지 말아야 해 침묵과 싸워야 해
제한 몸 어딘가에 꽂혀야 비로소 시작되는 인생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몸뚱이 삶 깊숙이 묻고 하나되어 살아야 해 반항하지 말아야 해 온몸으로 싸워야 해
하늘 향해 고개도 들지마 머리를 얻어맞거나 뽑혀 버릴 테니까
홍정순 시인 / 고무다라
창고 가장자리에 삼인일파 포개져 산다 먼지가 수북해도 언제나 새 것이다 파는 일에 시비가 붙지 않는다 번듯한 진열대도 필요 없고 구색 맞춰 모양별로 쌓아 두면 된다 배추를 절일 때나, 마을 큰일 때나 웅기중기 모여 앉아 일하는 부녀회원들처럼
상조회 명단엔 산 사람의 이름만 있다 은희 아버지 이름 속에 살던 은희엄마는 저 혼자만 몰랐다 상조회 명단을 들여다본다 동네 어른들과 부모님의 이름을 본다 고무다라에 담긴 거품처럼 우는 부녀회원들 덕구 엄마는 아껴 두었던 금목걸이를 걸었고 종식이 엄마는 금돼지를 꺼냈다 양조장 연탄난로 연통을 타고 노을빛 탄물, 고무다라 밑둥치 때리며 떨어진다
은희엄마 죽어서, 오늘 고무다라 하나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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