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여명 시인 / 수탉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19. 05:00

이여명 시인 / 수탉

 

 

닭장 안에 암탉이 스물 둘, 수탉이 다섯

어릴 때는 모르더니 어른 닭이 되니

요놈 수탉

스물 둘 암탉을 차지하려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힘 있는 수탉 한 놈이 힘없는 수탉 꽁무니 쫓아가며 뒤통수

쪼아대는데

하루도 아니고 보는 대로 쪼는데

힘없는 수탉 넷 대가리에 피가 낭자하다

암탉들은 낮달 보듯 보는 둥 마는 둥

이 일은 수탉들만의 일

주인양반 닭장 바깥에 서서 힘을 보태는데

저 놈 수탉 고루 나누어 하면 되겠는데 어째지

힘 모아 한 놈 수탉을 치면 되겠는데 어째지

저 닭대가리 같은 놈 일대일로만 알고 있으니 어째지

저 놈부터 먼저 잡아야겠는데 어째지

주인 헛힘만 보태는데

하루에 물을 몇 통 비우는 놈

물을 사료보다 더 많이 먹는 놈

저 놈 보다 계란이 더 비싼 놈

 

맞은 편 번식우 축사에는

첫 발정 온 암소들끼리 붙어

올라타느라 어린 뿔때기가 빠졌다는데

 

 


 

 

이여명 시인 / 한 마리 쥐와 입을 벌린 둥지

 

 

 요즘 남자들, 쥐 한 마리씩 포켓스퀘어처럼 찔러 넣는다 주머니도 쥐 한 마리 집어넣기에는 안성맞춤 꼬리가 앞뒤 둘 달린 대부분 흰쥐들인데 꼬리 일부가 악서사리처럼 살짝 나와 한번 잡아당기고 싶은데 그러나 꼬부라지며 다시 파고 들어가 그 끝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여자들, 또 새둥지를 하나씩 목에 건다 그네처럼 매달려 오락가락 닭둥우리 내려온 듯 소구유가 뜬 것 같이 하늘의 흰 달이라도 받을 듯 공손하게 입 벌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무엇이 담겨있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계란꾸러미같이 주름을 엮어 만든 것 막 바다로 띄우는 흰 돛단배 같은 꾀꼬리 날아가고 흔들리는 빈 둥지 같은 것

 

 그러다가 쥐를 꺼내어 입을 막고 쥐 하루속히 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남자들, 날아가고 없는 빈 둥지로 입을 봉하고는 꾀꼬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자들

 

 


 

이여명 시인

1950년 경북 경주 출생. 본명: 이종백.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되며 등단. 시집으로 『말뚝』 『가시뿔』이 있음. 한국문인협회, 경북문인협회회원, 경주문인협회회원. 시in 동인. 공무원문예대전 우수상, 제3회 경주문학상 수상. 2000년대 시인회의 회원. <목마시> 동인 회장. 경주 불국동사무소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