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 시인 / 걷는다는 것 외 1편
장옥관 시인 / 걷는다는 것
길에도 뼈가 있었구나
차도로만 다닐 때는 몰랐던 길의 등뼈 육차선 대로변 인도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뼈마디를 밟고 저기 저 사람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검은 혓바닥
갈라진 거울처럼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이 혓바닥이 되어 핥아야 할 뼈마디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장옥관 시인 / 꽃 찢고 열매 나오듯
싸락눈이 문풍지를 때리고 있었다 시렁에 매달린 메주가 익어가던 안방 아랫목에는 갓 탯줄 끊은 동생이 포대기에 싸인 채 고구마처럼 새근거리고 있었다 비릿한 배내옷에 코를 박으며 나는 물었다 -엄마, 나는 어디서 왔나요
웅얼웅얼 말이 나오기 전에 쩡, 쩡 마을 못이 몸 트는 소리 들려왔다 천년 전에 죽은 내가 물었다 -꽃 찢고 열매 나오듯이 여기 왔나요 사슴 삼킨 사자 아가리를 찢고 나 는 여기 왔나요
입술을 채 떼기 전에 마당에 묻어놓은 김장독 배 부푸는 소리 들려왔다 말라붙은 빈 젖을 움켜쥐며 천년 뒤에 태어날 내가 말했다 -얼어붙은 못물이 새를 삼키는 걸 봤어요 메아리가 메아리를 잡아먹는 소리 나는 들었어요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미역줄기 같은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얘야, 두려워 마라 저 소리는 항아리에 든 아기가 익어가는 소리란다
휘익, 휘익 호랑지빠귀 그림자가 마당을 뒤덮고 대청 기둥이 부푼 내 안고 식은땀 흘리던 그 동짓밤 썰물이 빠져나간 어머니의 음문으로 묵은 밤을 찢은 새해의 빛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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