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최창균 시인 / 초록 당신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20. 05:00

최창균 시인 / 초록 당신

 

 

먼지 바람 부는 빈들

빈들빈들 놀리기야 하시겠습니까

 

침묵의 소리로 걸어오는 당신,

당신은 젖은 눈으로

그 길을 걸어오십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세상처럼 오십니다

저 많은 초록을 다 어디다 쓰시려고요

 

빈들에

모를 심고 계신 아버지,

꼭 당신이 그리 한 줄 압니다

초록으로 번지는 당신입니다

 

 


 

 

최창균 시인 / 오동나무

 

 

더 큰 나무를 만들기 위하여

나무를 자르면 허공이 움찔했다

나무가 떠받치고 있던 허공이 사납게 찢어졌다

잘 지냈던 허공과 떨어지지 않으려

몇번이고 나뒹굴다 결국은 아주 누워버렸다

밑동에서부터 둥글게 허공이 도려지는 순간이었다

허공이 떠난 빈자리에 새순이 불끈 솟아올랐다

돌아온 허공이 봉긋 부풀어오르고

나무는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이제

저 땅에서 걸어나온 시간만큼

나무는 자랄 것이지만, 방금

한 여자애가 태어나면서 쏟는 울음소리로

한껏 푸르러질 것이지만, 그럴 것을 믿는

그 집, 오동나무 집

 

시집 -백년 자작나무 숲에 살자( 2004년 창작과 비평사)

 

 


 

최창균 시인

1960년 경기도 일산에서 출생. 198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백년 자작나무숲에 살자』(창비, 2004)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