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김선우 시인 / 꽃, 이라는 유심론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1. 28. 05:00

김선우 시인 / 꽃, 이라는 유심론

 

 

눈앞에 열 명의 사람이 잘빠진 몸매로 웃고 있어도

백 명의 사람이 반짝이는 선물을 펼쳐 보여도

내 눈엔 그대만 보이는

 

그대에게만 가서 꽂히는

마음

오직 그대에게만 맞는 열쇠처럼

 

그대가 아니면

내 마음

나의 핵심을 열 수 없는

 

꽃이,

지는,

이유,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 2012)

 

 


 

 

김선우 시인 / 목련 열매를 가진 오후

 

 

목련꽃을 사랑하는 이에게

목련 열매를 마저 보여주어라

 

꿈지럭거리며 허물 벗는 무섬증 같은

 

여러개의 심방을 가진 심장,

분열하는 붉은 열매를 찢고

 

꽃이 사뿐 날아오를 때

 

꽃을 기억하는 사람의

꽃이 아니라

 

꽃이 기억하는 열매까지

보여주어라

 

꽃으로 보여주어라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에서

 

 


 

김선우(金宣祐) 시인

1970년 강원 강릉에서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녹턴』,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 『물의 연인들』 등. 산문집 『물밑에 달이 열릴 때』 『부상당한 천사에게』 『사랑, 어쩌면 그게 전부』 등. 현대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고정희상, 제1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발견문학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