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박용진 시인(안동) / 버티고vertigo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2. 3. 05:00

박용진 시인(안동) / 버티고vertigo

 

 

파티마 삼거리가 지워진다

폭설로 밤은 멈춘 생장점을 맴돌고

열차를 놓친 피난민처럼 달구지 밑 등걸잠을 청한다

 

웅웅대는 응급실 전등 소음 사이

의문사한 친구와 죽어 가던 아이를 분쇄하고 싶었다

장례식장 떠돌던 일이 옻 오른 좁쌀 뾰루지로 바늘겨레가 된 팔에서 피고 몸은 천근으로 무거워지고

 

[잠깐만요 전할 게 있습니다 여기서 쓰는 언어는 단순함입니다 [미루어]는 그만 쓰면 좋겠습니다 그저 야생에서나 쓸 소통 같아요 해독 불능의 문양만 늘어놓아요 이상 마칩니다]

 

신이 뭐라 했나

생각할 틈 없이 살라,

또 속았어 잊힐 것을 집어낸 거

중력으로부터 경고를 무시한 프로메테우스를 찾고 싶은

 

탄 재 날리는 오늘 끝

버티고 버텨도 늘어 가는 상실

진창의 이유를 묻다가

나는 늘 죽어가

 

밤하늘 까마귀 떼에 묻힌 먼 열차 소리 찾으며

불면을 함께한다

 

-시집, 『파란 꽃이 피었습니다』, 천년의 시작, 2021,

 

 


 

 

박용진 시인(안동) / 파란 꽃

 

 

너를 불러도 묵묵부담이었지

 

쳐다보며 부끄러워지고 파잔* 뒤의 코끼리처럼 무기력해지고

 

입을 여러 번 휑궈도 부서진 영혼에 대해 할 말은 뱉기 어려워

 

꽃을 핀다면 믿습니다만 피는 파란색인가요

 

빈 젖 사이 뒤척이는 아이

 

모두의 장례식장을 시작할 때 입니다

 

*파잔 phajaan - 코끼리를 길들이는 매질

 

 


 

박용진 시인(안동)

경북 안동 출생. 2018년 《불교문예》아람문학 등단. 시집으로 『파란 꽃이 피었습니다』(천년의시작, 2021)이 있음. 문경문학상 수상. 현대향가시회, 시현실샘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