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균 시인 / 어치의 도토리 외 1편
최석균 시인 / 어치의 도토리
저장용 도토리를 입 안 가득 물고 와 나뭇가지나 땅속에 숨겨두는 새 부지런히 잘 우는 새
어치는 종종 숨겨둔 도토리를 잊고는 소리를 바꿔가며 운다고 한다
어치 울음이 깔릴 즈음 황매산 비알엔 땔나무 한 단이고, 감자 한 바구니 들고 숨넘어갈 뻔한 가슴을 몇 번이고 눌러서 재운 낮과 밤의 그을음이 얼룩져 있다
종합검진 한 번 안 받고 암 진단 받자마자 산으로 날아가신 큰 이모 장롱 속에서 오래 숨 쉬던 통장 몇 개가 여남은 평 그늘을 드리웠다
그늘에 앉아 잠시 귀 기울이면 도토리를 물고 와 꼬깃꼬깃 숨겨놓고 이리 아파서 울고 저리 아파서 우는 늙은 새소리가 들린다
시집『유리창 한 장의 햇살』2019 천년의시작
최석균 시인 / 집 보러 다니던 날의 허공
떠돌이 거미 한 마리가 접근하자 집을 거의 다 지어가던 거미가 일을 멈추고 잽싸게 맨 가운데로 가서 탁 버티고 노려보며 집을 흔들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고함소리가 떨어졌다 접근하던 거미가 물러났다가 다가오니 또 똥줄 빠지게 중심으로 달려가 온몸으로 쉿쉭 집을 굴렀다 팽팽하던 햇살과 바람이 맥없이 휘었다
쉬었다 가려고 둘러본 숨찬 길목이었다 허공의 무게에 일그러진 방 한 칸 끊긴 연실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줄을 타고 흔들지 못하는 거미는 현기증을 끌며 지평선을 넘어간다 끈적거리는 속을 실로 뽑지 못하고 노을과 어둠으로 짠 집에 훌쭉한 짐을 푼다
-시집 <수담(手談)>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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