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 시인 / 옥수수 껍질을 벗기며 외 1편
송희 시인 / 옥수수 껍질을 벗기며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데 울컥, 영락없이 아버지를 감쌌던 수의다 버스럭버스럭 아직 빳빳하다 덥수룩한 머리칼에 실바람이 촉촉하다 아니 아 버 지 여태 여기 계셨어요 푹 삶아 낱낱이 발라 먹고 뜯어 먹고도 무얼 더 빼 먹을 게 있다고 못 가시게 붙들고 있었나 “그래도 제 이빨이 좋은 거여” 손사래를 치시어 모른 척 금니 하나 끼워 드리지 못했다 태워 가는 일이 사는 일이라 하시며 부서진 이를 빼내고 꾹 눌러 두신 불뚝심지를 꺼낸다 타다 만 불씨도 없이 흐옇다 제발 나에게서 도망치세요 아버지 억지로 밀어 넣는다 이제야 내게서 안녕
시집 『고래 심줄을 당겨 봤니』 2022. 천년의시작
송희 시인 / 물먹는 하마
복수腹水 가득 찬 하마가 쓰레기통 속에 꼬꾸라져 있다 사촌들인지 모양새가 비슷하다 빨강 고무장갑이 수거함에 처박힌 하마들을 정리한다 이놈들은 미리 다 게우고 왔네 샅샅이 뒤지다 뒤통수를 내리친다 컥 남은 오물을 토해 낸다 뱃구레도 작고만 뭘 처먹겠다고 잠입을 해 허기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어딨어요 이게 전부라구요 혼자 한 짓이라니까요 어느 집이나 하마 한 마리씩 키우는 건 다 알아 임마
새끼 하마를 분양받아 그 집 장롱 속에 침투시켰다 양복 주머니랑 베갯머리 눅눅한 낌새를 개구리가 벌레 채듯 낚는다 해서 시도한 것이다 하마에게는 물관이 있다 곰팡이 좀벌레 박쥐 아지트까지 매설되었다 신속하게 끝내야 할 텐데 하필 계속 폭염이다 이러다간 결정적 악취를 뽑아내지 못한다 어린놈을 보냈더니 쉽게 쫓겨났다 물만 먹었다
시집 『고래 심줄을 당겨 봤니』 2022.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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