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복효근 시인 / 멸치똥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2. 12. 31. 05:00

복효근 시인 / 멸치똥

 

 

똥이라 부르지 말자

그 넓은 바다에서

집채만한 고래와 상어와

때깔도 좋은 열대어들 사이에서

주눅들어 이리저리 눈치보며

똥 빠지게 피해다녔으니 똥인들 남아 있겠느냐

게다가 그물에 걸리어 세상 버릴 적에 똥마저 버렸을 터이니

못처럼 짧게 야윈 몸속에

박힌 이것을 똥이라 하지 말자

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잡아먹은 적 없이 잡아먹혀서

어느 목숨에 빚진 적도 없으니

똥이라 해서 구리겠느냐

국물 우려낼 땐 이것을 발라내지도 않고

통째로 물에 넣으면서

멸치도 생선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적마다 까맣게 타들어갔을

목숨 가진 것의 배알이다

배알도 없는 놈이라면

그 똥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들어낸 자리

길고 가느다란 한 줄기 뼈가 있겠느냐

밸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창시도 없이

똥만 그득한 세상을 향하여

그래도 멸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등뼈 곧추세우며

누누천년 지켜온 배알이다

 

 


 

 

복효근 시인 /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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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눈매가 고운 여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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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관절 앞쪽 침 자리를 고르며

팬티를 살짝 들어 내린다

.

움찔하는 사이

.

커튼 사이로 창 밖

목련 몇 송이 들여다보는

 

 


 

복효근(卜孝根) 시인

1962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어느 대나무의 고백』등이 있음.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2015. 제2회 신석정문학상. 대강중학교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