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식 시인 / 설야서정(雪夜抒情) 외 1편
강우식 시인 / 설야서정(雪夜抒情)
저승과 이승을 건네이는 얕은 기침 소리 하나 없이 눈이 내린다.
오랜 기다림 속에 견디어 오던 사랑도 恨으로 남고
우리가 젊어서 눈물로 흘려버린 유서 한 장 만큼한 죽음같이 가벼운 부피로 하이얀 눈이 내린다
아! 눈 내리는 밤이면 시렁만큼 높은 곳에 마련되었을 관 속으로 나들이 갈 무명옷 한 벌과
저승의 어느 길목에 가더라도 하얗게 살 내 가시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강우식 시인 / 노인일기2 -丈母喪
장모 이 아무개 여사는 85세까지 혼자 살다가 돌아가셨다. 외아들도 시집간 두 딸도 나름대로 모시지 못한 까닭이 있겠지만 나는 장모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본다. 불효스럽게도 딸들은 어머니를 뵈올 때마다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한 발 먼저 간 남편 곁으로 가시라고 틈만 있으면 강요했고 마침내 장모는 단식 아닌 단식을 시작하여 체중 25kg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살아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저녁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의 끝도 못 보고 말았다. 혼자 사는 외로움의 그 지독한 깊이를 누가 헤일 수 있으랴. 나는 입관시 미이라 같은 그 몸뚱어리가 고독으로 찌들고 안이 막혔음을 똑똑히 보았다.
장례 후 장모의 방에는 누가 먹으라는 것인지 정성스레 담근 노오란 모과주가 장롱 속에 한 병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