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루 시인 / 그늘에서 그늘 사이
강나루 시인 / 그늘에서 그늘 사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희미한 가로등이 비추는 골목 밤새 내다버린 폐지며 종이박스 노인 하나 쓰레기장을 뒤진다 평생 가난의 땟국 온 몸에 걸치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목숨 남들은 편안하게 잘도 살아가는 문명의 그늘에서 먹고 버린 욕망의 껍질을 뒤지며 정의도 복지도 먼 나라 일일뿐 병들어 누운 아내의 기침소리와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소리만 들릴 뿐 약값도 안 되는 폐지를 찾아 먹이를 찾는 길거리 고양이처럼 새벽 그늘에서부터 밤 그늘까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고행 이것은 수행도 그 무엇도 아니다 리어카 가득 넘치는 폐지의 무게가 노인의 등을 짓눌러도 그 무게만이 노인의 희망이다 날이 밝아도 걷히지 않는 노인의 그늘 무더운 여름에도 한기가 엄습한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0월호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