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림 시인 / 달의 전설 외 1편
박해림 시인 / 달의 전설
달이 빌딩을 삼켰다가 빌딩이 달을 뱉었다가 한다
강을 건너고 내를 건넜던 기억 그 기억조차 빌딩에 가려 어두워졌다고 하는데
어두운 당신의 몸에서 달은 발이 닳도록 걸어다니는데
달이 점령했던 숲과 마을과 새를 빌딩에게 넘겨주면서 욕망과 일탈과 의심이 밤을 가득 채워버렸다
그래서 빌딩 모서리에 찢긴 달은 누군가 내뱉은 불평이거나 그늘이거나 허공이다 굶주린 독설의 그림자다
이 밤, 잠 못 드는 당신은 찢긴 달,
솜씨 좋은 이야기꾼 할머니가 새벽닭이 울 때까지 해진 달을 입으로 꿰매었다는
아주 오래 전의 전설에 밤새도록 귀를 열어놓는
빌딩이 순순히 달을 내어놓을 때까지 달이 마지막 빌딩을 다 뱉을 때까지
박해림 시인 / 엄마는 아직도 늙어가는 중
오래된 집이 햇볕에 편안히 기대고 있다
미간을 좁히며 노랗게 삭힌 무릎 세워 벽을 이불처럼 한것 끌어당기고 있다
눈도 귀도 먹어서 불러도 듣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하는데 건듯 바람이 창문을 흔들다가 수숫단 머리칼을 흩어놓다가 앙상한 어깻죽지를 조물락조물락 만져주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는 턱을 떨어뜨리며 철 이른 봄을 가랑가랑 삼키고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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