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박지우 시인 / 밤의 퍼즐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1. 16. 05:00

박지우 시인 / 밤의 퍼즐

 

 

잠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는 밤이다

 

가령, 불면을 앓는 소파의 번민에 대해 티브이 옆에 던져진 리모컨의 싸늘함과

설익은 어둠을 끓이는 가스레인지에 대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정이 갈라지고 찢어져

둥둥 떠다니는 밤의 조각들

어둠의 속눈썹을 이어 붙인다

 

밤이 부서지는 소리

며칠간의 선명한 울림이 수도꼭지에서 떨어진다

 

식탁에 놓인 어둠을 맛본다

반쯤 녹아내린 초콜릿, 어제 먹다만 찌개이거나 가방에 구겨 넣은 눈물의 맛

 

밤이 앓는 소리를 낸다

 

어둠에 물린 이빨자국이 조금씩 아물자 잠시 애인이었던

잠이 눈을 뜨고

조각조각 나누던 어둠을 아침의 액자에 걸어놓는다

 

 


 

박지우 시인 / 이중환상

 

 

#1

 

  잿빛으로 물든 하늘이 중화되어지는 오후, 햇살이 헤어숍 담벼락에 낙서를 하는 동안 1월의 청구서가 날아온다 막힌 감정의 출구를 찾기 위해 이맘때면 흰빛으로 물드는 한복판에서 반올림 되지 못한 몽상들이 축축이 젖어들고 스토리 한중간을 떠도는 눈발이 기억의 첫 갈피에 달라붙는다 가라앉은 하늘에 거리는 속도가 느려지고 귀가는 종종걸음이다 거리는 소음에 펄럭이고 짧은 이야기는 허물어진다 계절의 오븐에서 구워진 파삭한 시간들 누군가 쌓이는 오후를 휘휘 젓는다 하루를 끌고 가는 길이 질척거린다

 

##2

 

  수많은 생각들이 부딪혀, 모자를 쓴 생각들, 서로의 얼굴도 보지 않지 구세군의 종소리를 번역하다 발에 치인 생각들, 바람의 중얼거림에서 태어난 또 다른 생각들, 색색의 옷을 갈아입고 생각에 구멍을 내는 오후, 노랑머리 소녀가 뿜어내는 담배연기가 도넛처럼 둥둥 떠다녀, 도시의 유리창은 과장되고 때론 아무생각 없음이란 한마디에 우발적인 사고로 이어지지, 시간을 키웠다 줄였다, 붉고 파란 감정을 엎지르기도 하는, 이를테면 달의 수다를 들으며 상상의 마지막 구절에서 잠든 장미의 가시로 꽃을 피우기도 하지, 잃어버린 인간을 재생하려고 도시는 분수를 세우고 공원과 벤치를 만들고, 신은 계절을 불러오지

 

​월간 <현대시> 2015. 1월호

 

 


 

박지우 시인

충북 옥천에서 출생. 2014년 《시사사》 로 등단. 시집으로 『롤리팝』이 있음. '현재 ‘시시동인’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