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이유정 시인 / 왕바랭이

파스칼바이런 2023. 1. 20. 05:00

이유정 시인 / 왕바랭이

 

 

저마다 제 목숨값으로 안간힘을 다해 살아가지만

잡풀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들은

혈기 왕성할 때 우지끈 뽑혀 내동댕이쳐진다

 

한여름 가뭄에 몸을 단련한 왕바랭이는

마를수록 단단해지는 뿌리를 땅속에 감춘 채

손과 손을 맞잡고 영역을 넓힌다

 

이제 허리만큼 자란 왕바랭이와 맞대결을 해야 한다

샅바를 감아쥐듯 허리춤을 붙잡고

몸을 바싹 밀착시킨다

손끝에 기를 모아 왕바랭이를 잡아당긴다

툭, 몇 가닥 줄기 끊어지는 소리가

나를 떠밀친다

 

꼬리를 끊어 버릴지언정 쓰러지지 않을 오기로

마디마다 뿌리를 내렸으리라

지금 던져진 한 줄기 가느다란 뿌리로도

촉을 뻗고, 몰래 꽃을 피우고, 서둘러 또 씨앗을 맺겠지

 

언제 어디에 던져져도 살아남을 독오른 생애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1월호 발표

 

 


 

이유정 시인

2017년 《미네르바》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 『사랑은 아라베스크 무늬로 일렁인다 』. 동시집 『사라진 물고기』 등이  있음. 제4회 전영택문학상, 제8회 전국계간문예지우수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