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나해철 시인 / 긴 사랑 외 2편

파스칼바이런 2023. 2. 2. 05:00

나해철 시인 / 긴 사랑

 

 

내가 그 여자를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고

어젯밤 아내가 말했습니다

소리없이 웃었던가요

쓸쓸한 일이지요

 

처자 있는 사람이

젊은 여인과 친구가 되어 연인이 되어

그 시절을 견디었지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던 때였던가요

 

참담한 고통과 지극한 기쁨이

따가운 햇살과 서늘한 그늘처럼

함께했지요

불같이 뜨겁고 얼음처럼 차가웠던가요

 

가을은 가고 또 오는데

귀 밑에 늘어난 흰빛과

먼 하늘 바라보는 그림자 데리고

아직껏 길 위에 서 있네요

 

 


 

 

나해철 시인 / 어떤 이별

 

 

죽어서 헤어지는 것 보담

살아서 한 이별은

대수롭지 않아 라고 말하지 마오

살아서 한 이별 때문에

죽기도 하니

죽어야

진정으로 끝나는 이별도 있으니

 

 


 

 

나해철 시인 / 내 마음 쪽배

 

 

마음을 부수어

쪽배를 만듭니다

마지막 아름다운 기억 하나

떼내어 돛으로 답니다

거칠고 막막한 바다를

차라리 깃털처럼 가볍게 떠갑니다

텅 빈 쪽배가 슬픕니다만

그래도 저 끝까지 흔들리며 갑니다

 

-詩集(文知詩人選ㆍ171)『긴 사랑』에서

 

 


 

나해철 시인

1956년 전남 나주 영산포 출생. 전남대 의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 의학박사.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산포」가 당선되어 등단. 1984년 첫시집 『무등에 올라』 간행 이후, 『동해일기』 『그대를 부르는 순간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손』 『긴 사랑』 등이 있음. 현재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 중. 현재 나해철성형외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