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성 시인 / 민지의 꽃 외 1편
정희성 시인 / 민지의 꽃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정희성 시인 / 11 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1 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나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나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 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아메리카 원주민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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