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평 시인 / 입관 외 2편
이인평 시인 / 입관 어머니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마지막 자취를 감추는 시간 굳은 표정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은 얼굴을 마주하고도 일부러 입을 다물어버린 것처럼 고요조차 황망했다 괜찮다 괜찮다 나는 괜찮으니 서로 우애 있게 살기 바란다고 하실 뜻도 미처 전할 사이도 없이 무슨 말씀이 들릴 듯 말 듯 할 때 관뚜껑이 닫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주 없어진 건 아니었다 어머니는 지금 관 속에서 흙 속에서 하실 말씀을 침묵으로 다 하실 것이었다 나, 여기 있다고, 이미 죽기 전해 다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래도 아직 못 알아듣겠느냐고 관 속에서 들려왔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더 크게 들리는 말씀 관을 뚫고, 무덤을 뚫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크신 말씀 세월이 흘러도 내 안에 사는 죽음보다 깊고 황망한 말씀에 뼈가 울린다 계간 『서정시학』 2023년 가을호 발표
이인평 시인 / 모네의 수련
생명은 물에서 태어나지 원래 있었던 것처럼
너는 눈물 속에서 꽃을 피웠지 사랑이라고 말했던 건 모두 눈물이었지
연못에서 새벽안개가 피어날 때 너는 눈물에 씻긴 한 송이 수련으로 피어났지
분홍빛 행복이 물에 어려 물속 어딘가에 숨겨둔 비밀인 양 눈물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출렁이지 않았지 아주 잠깐이면 생은 끝이라고 안개가 말했지만
사랑은 끝이 없을 거라고 가슴에 고인 눈물의 연못 속에서 마냥 피어날 거라고 고요를 흔들며 버들이 말했지
사랑에서 너는 늘 피어나지 그것이 미움일지라도
보면 볼수록 모네의 화폭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서 날마다 너는 수련으로 피어나서 영원히 죽지 않을 거야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계간 『서정시학』 2019년 여름호 발표
이인평 시인 / 소금의 말
네 손으로 내 몸을 한 움큼 집는 순간 창백한 내 피부에서 해풍에 말려진 쓰린 결정체의 짠 빛을 볼 것이다
삶은 매섭게 짠 것이라고 저물게 깨닫는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바다에 닿는 긴 아픔을 깨물게 되리라
너는 원래 소금이었다 내 짠 숨결이 흙으로 빚은 네 몸을 일으킬 때 네 눈엔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의 짠맛이 네 유혹의 단맛을 다스렸다
보라, 파도의 씨눈들이 밟히는 네 영혼의 길에서 하얀 내 유골의 잔해가 빛난다
나를 쥐었다 놓는 그 시간에 한 주먹 내 몸이 흩어지면서 피안으로 녹아 흐르는, 절여진 네 목숨의 긴 호흡을 만나리라
2000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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