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장승리 시인 / 난코스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3. 4. 05:00

장승리 시인 / 난코스

​손을 너무 씻어서

지은 죄가 많아서

죽고 나서도 나는 바로

손을 씻을 거 같아

씻지 않아도 되는 곳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산다는 것은 범죄의 이면

공포심 때문에 희망을 체계화하고

씻을수록 더러워지는 곳에서

매뉴얼은 사랑이야

삶을 뺀 사랑

순도 백의 사랑

그러니 제발

매뉴얼대로 나를

하지만 결함과 진실을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양변기 속에

밥이 말아진 꿈이라니

포복절도 후에는 대성통곡

흠 없는 헛발질을 위해선

연습 또 연습이

필요하니까

 

 


 

 

장승리 시인 / 체온

 

 

​당신의 손을 잡는 순간

시간은 체온 같았다

오른손과 왼손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놓았다

가장 잘한 일과

가장 후회되는 일은

다르지 않았다

 

-시집 『무표정』, 문예중앙, 2012

 

 


 

장승리 시인

1974년 서울에서 출생. 한세대 신학과 졸업. 2000년 서울여대 사회사업학과 졸업. 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알리움〉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습관성 겨울』(민음사, 2008)과 『무표정』(문예중앙, 2012), 『반과거』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