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한명원 시인 / 아침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3. 6. 05:00

한명원 시인 / 아침

 

 

안개너머

 

새들이

 

해를 물고 와 수면에 떨어뜨린다

 

강이 아침을 짓는다

 

강물이 타는 냄새

 

출렁임도 없이

 

김이 솟아오를 때

 

아가미로 냄새를 빨아들이는

 

송어들

 

비늘마다 반짝 살이 오른다

 

-시집 <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에서

 

 


 

 

한명원 시인 / 조련사 k

 

 

 그는 입안에 송곳니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두 발로 걷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어 혼자 있을 때 네 발로 걸어도 보았다. 야생은 그의 직업이 되었고 조련은 가늘고 긴 권력이 되었다.

 

 모든 권력은 손으로 옮겨갈 때 가벼워진다. 눈치를 보는 것들의 눈빛은 언제나 심장을 겨냥하는 법. 다만 두려운 것은 손에 들려 있는 권력일 뿐이니까.

 

 조련사 k. 그는 아침마다 동물원을 한 바퀴씩 도는 순방이 있다. 금빛 은행잎이 k의 머리 위로 왕관처럼 씌워진다. 철조망에 갇힌 초원이 펼쳐져 있다. k는 손을 흔들거나 휘파람을 분다. 잠자던 맹수가 눈을 뜨더니 달려온다. 무릎을 꿇는다.

 

 k는 맹수의 꼬리를 목에 두르고 맹수코트를 걸치고 곤봉을 휘두르는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

 

 어느날부터인가 k의 얼굴에 구레나룻이 생기고 몸에 털이 자라고 손톱은 길어졌다. 모든 모의謀義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다. 말 안 듣는 맹수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며 맹수보다 더 맹수처럼 사나워져갔다.

 

 얼마 전 야생의 모의謀義가 철조망을 빠져나갔다. 그 후 k의 통장으로 감봉된 월급이 들어았다. k는 자기 목을 조르는 조련사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에 털이 빠지고 손톱이 빠졌다.

 

 조련으로 청춘을 보낸 k는 결국, 야생을 놓치고 말았다.

 

 새로운 조련사들이 들어오고 그들은 맹수들과 더 빨리 친해졌다. 동경하던 야생은 저 쪽에서 어슬렁거렸다. 이빨 빠진 맹수 한 마리가 다른 맹수 눈치를 보며 어슬렁거렸고 금빛 왕관은 가을 저 쪽으로 다 날아가 버렸다. 얼마간 퇴직금의 조련을 받는 힘없는 맹수가 되어 있었다.

 

 


 

한명원 시인

1965년 서울에서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음.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수혜.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현재 기업체 인문학 강사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