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시인(서산) / 독서 외 2편
이경호 시인(서산) / 독서
시장(市場)은 누덕누덕한 사기(史記) 한 권이다
함석과 슬레이트 판자로 만든 표지는 아주 낡았다
책갈피처럼 나 넘보지만 동부시장이라고 쓴 큼지막한 제목만 읽어낼 뿐이다
생의 동쪽 찾아가는 유목민들이 아기가 크는 동안 잠시 눌러앉은 푸른 초원
어느새 눈 맑은 부족이야기를 읽고 있다 한 여인이 건넨 덤 때문에 나도 푸른 초원편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이경호 시인(서산) / 암소 한 마리
암소 한 마리, 라는 고깃집에서 암소가 묻힌 봉분들이 나온다.
스스로 무덤이 되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물고 들어간다.
이경호 시인(서산) / 말뚝 유전
그가 면접을 치르고 말뚝과 밥그릇 받던 날 주인얼굴엔 환하게 초승달이 떴다 초승달이 상현달 되었다가 보름달 그믐달을 반복하는 동안 그는 직함 하나 갖게 되었다 멍석전문가 명함으로 멍석을 짜고 다듬는 일을 하였다 하루에 한 장 발자국멍석 짜고 나면 하늘에는 별이 떴다 달뜨면 멍석은 빵처럼 빛났고 아침마다 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꼬리를 흔들거나 배 드러낼 줄 아는 눈치 키웠는데 횟배 앓고 있었을 것이다 오랜 가계의 병력으로 속이 메스꺼워 빵을 몰래 파먹었다가 들통이 난 날 주인이 초승달전화기를 들었고 작은 빵에도 꼬리치는 강아지의 면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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