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림 시인 / 음식이 말을 걸다 외 1편
양승림 시인 / 음식이 말을 걸다
앞으로 뭔가를 먹을 때, 꼭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너 먹어도 돼? 간장 한 종지라도 그렇게 앞에 놓고 묻다보면 내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독선적이었나를 그리고 밥풀 묻은 숟가락 하나라도 앞에 놓고 그렇게 묻다보면 누가 압니까 토종닭처럼 살아온 나의 지난 날이 벌레 물려 가렵던 상처처럼 덧나기만 하던 나의 희망들이 마침 내 날 용서하고 어느 시골 허름한 국밥집 쇠고기 다시다처럼 날 껴안아 줄는지....
계간 『시와세계』 2015년 여름호
양승림 시인 / 아내의 편지
일주일 내내 술만 먹고 다녔더니, 드디어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야, 이 개눔아, 난, 뭐니? 고현정이가 나랑 동갑내기라는 건 알기나 하니? 내가 쫑내기 싫었던 건, 간장 한 종지라도 맛있게 밥을 지어 입 찢어지게 서로 떠먹여주다 보면, 니 볼에 붙은 밥알도, 이빨 새 낀 고춧가루도, 고현정 목에 걸린 보석 못지않을 것이라 믿어, 무언가 속에서 치밀어 오를 땐, 그래도 항문 열고 방귀 터줄이 너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나머지는 메일로 보냈으니까, 누까리로 보든지 말든지, 아이, 씨팔, 손가락 아파!
『시와세계』 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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