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라 시인 / 말을 다독이다 외 1편
장한라 시인 / 말을 다독이다
순백의 하얀 말등 검은 선 덧입혀 얼룩말을 그린다 완만한 오름에 꼬리를 내려놓은 말 새별에 당신의 말을 풀어놓고 서로에게 말을 건다 그도 나도 말이 없다 검은 선들 사이 얼룩말 한 마리
말들이 달리지 않는다
가장 솔직한 감정을 지웠군 말로 말하지 못하는, 무심한 표정 작고 하얀 말의 소리 없는 외침 무슨 말인지 다시 말해 줄 수 있나요 위로되지 않는 말들이 말을 풀어낸다 공간을 통해 몸짓으로 삶의 일상과 말의 무게를 지탱할 또 다른 말이 필요해 끝없는 초원 떨어져 있는 것도 괜찮을 말들이 달아난 곳에 초록 짙은 말들이 연을 맺는다
시집 『철원이, 그 시정마』(상상인, 2022) 수록
장한라 시인 / 말들의 휴가
들뜬 마음 눌러두고 함께 오래 마주 봐야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고생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나날들 핥아주며 느긋하게 풍광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뒷발굽도 느껴봐야지
마방을 비집고 들어오는 물안개와 눈 감고도 훤한 부대오름 우진제비오름 길을 지우며 오늘은 조천 바다로 내일은 표선 바다로 미끄러져야지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고 간섭 없는 곳에서 들숨 날숨 껌벅껌벅 눈썹으로 헤아리다 하품 길게 하고 낮잠이란 게 어떤 것인지 별이 뜰 때까지 늘어져 맛봐야지
시집 『철원이, 그 시정마』(상상인, 2022)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