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황려시 시인 / 오래된 물감 외 2편

파스칼바이런 2023. 3. 18. 05:00

황려시 시인 / 오래된 물감

 

 

냄비가 죽었다

벌떡 뛰던 뿔돔의 꼬리가 수상했어

지느러미도 화가 나 있었거든

널브러진 냄비는 뚜껑이 열린 채 목격자가 누군가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울진 앞바다는 죽은 냄비로 가득하다

비릿한 육즙이 흘러내리지

나는 남친을 바꾸기 위해 세 개의 냄비를 더 주문한다

뿔 달린 돔을 부른다

"추가요" 너무 흔하게 만났던 불꽃은 아직 젊고

보란 듯이 안에 있는 것은 붉고

냄비가 죽어간다 내장을 비운 채 납작하게 안녕,

세 개의 냄비쯤 죽이기 좋은 날이지

입단속을 한다 우리는 헐렁하게 울진을 걷는다

아직 오늘이 되지 못한 걸음들, 다음에 보자

그냥 편하지

다음이란 말은 딱 부러지지 않아서 너는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지느러미를 질질 끌고 걷는다

 

냄비가 또 불을 뭉치고 있었다

 

 


 

 

황려시 시인 / 먹구름

 

 

너무 무거우면

울어버리지 뭐

 

 


 

 

​황려시 시인 / 개불알꽃

 

 

황구黃狗는 좋겠네

꽃 달고 다녀서

 

 


 

황려시 시인

2015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 (본명 황영자), 시집 『사랑 참 몹쓸 짓이야』, 『머랭』, 디카시 『 여백의 시』가 있음. 약사. 제12회 시와세계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