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 시인 / 어느 날 아이가 죽고 싶다고 말했다
강순 시인 / 어느 날 아이가 죽고 싶다고 말했다
뿌리가 흔들리는 나무 얘기야 19톤의 폭풍을 견디는 많이 아픈 나무 자신을 지킬 어떤 금언도 없이
가지 사이로 새어 나가는 기도를 주워 담을 푸른 용기나 고집도 없이 온몸이 검은 독백으로 가득 젖어 나비조차 죽어버린 어둠
귓속으로 북풍 모래가 스며들어 막힌 귀를 허공에 내민 순간 그 대신 나무 입술이 갑자기 사라진 얘기
이때, 엄마들은 깨진 유리 같은 얼굴을 무릎에 묻고 깨닫게 되지 바람이 바뀌면 신의 속성이 변한다는 걸
폭풍의 밤에 오는 새로운 신의 정체는 고통의 벽돌을 몰래 여러 장 쌓아 올린 구조 사자나 하이에나가 으르렁거리면 평소보다 더 깊은 어둠이 몰려오는 이유
폭풍을 멈춰 세울 어떤 비기(祕器)를 찾기 위해 밤새 출구도 없는 비밀이 자랄 때 엄마들의 불면은
이해할 수 없는 사막을 밤새 걸어가 여기저기 날린 나무의 은유들을 주워 올리는 원시의 세계
나무는 광폭하고 가난한 절벽을 지나 작은 창의 불빛으로 빛나는 버릴 수 없는 기다림의 종소리
넓고 평평한 초원이 모두 야생 동물의 것임을 우연히 알게 된 나무 얘기야 아득한 높이와 깊이로 부서지며
하늘과 태양과 바람을 버리는 나무 19톤 폭풍이 19그램이 되는 수상한 종교를 찾아 떠나는 엄마와
온몸이 흔들리는 많이 아픈 나무 얘기
웹진 『시산맥』 2022년 여름호 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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