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노수옥 시인 / 하루살이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3. 22. 05:00

노수옥 시인 / 하루살이

 

 

태어난 곳은 늪이었다

날마다 물속에서 꿈꾸는 우화등선

그는 물에 젖지 않는 날개를 가지고 싶었다

허공이 그를 기록하기까지

몸에 물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어느 날 늪에서 이적을 시도했다

그리던 하늘을 향해 안간힘으로 날아올랐다

아차,하는 순간 추락을 거듭한 그의 비행기록은 저조했다

할 수 있는 건 춤

남아 있는 시간을 계산하며

있는 힘을 다해 몸으로 쓰는 글씨

어둠속에서 불꽃이 일었다

불빛을 따라 하루살이들이 모여들었다

토막 난 하루를 이어 붙이려는

저 흘림체는 불꽃 보다 뜨겁다

누가 내일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앞날을 모르는 하루살이

안타까운 시간이 흐른다

투명한 날개가 불빛에 젖는다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데

디딜 데 없는 허공에서

어지러운 회전도 개의치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몸짓은 더 격렬해진다

허공에 짧은 생을 기록한 그는

다시 늪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노수옥 시인 / 양을 불러 모으는 새벽

 

 

 피리를 불고 있어

 

 고집쟁이 19번 침대에 앞발만 걸친 28번 근시안의 46번 갈라진 발톱을 내려다보는 92번 숫자를 세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건초더미 속에서 찾아내는 일

 

 말랑말랑한 잠의 뼈들은 한뎃잠을 자고 있지 잠에도 층이 있다면 주름 잡힌 지층에 화석으로 남은 새우의 굽은 등을 보는 일 자진하는 별빛을 가두어 단잠을 재울 시간이 필요한 거야

 

 베개의 높이를 낮추고 돌아눕는 생각에 이불을 덮어주며 무덤 같은 어둠을 통과하는 양치기 오래전에 잃은 양한마리를 찾아 피리를 불면, 不眠은 무너져 내린 건초더미로 숨어버리지 오늘도 나는 잠을 찾지 못했어

 

 귀가 닫힌 양을 위해 피리를 불고, 소리를 놓친 밤은 문 밖을 서성이고

 

 


 

노수옥 시인

충남 공주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15년 <시인정신>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울시인협회 회원. 중앙대 잉걸회 동인. 시집 『사과의 생각』 『기억에도 이끼가 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