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숙 시인 / 새를 가둔 항아리
임희숙 시인 / 새를 가둔 항아리 무서워요 발톱이 걸렸어요 누가 발가락을 물고 놓아주질 않아요 알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죠 깨뜨리겠어요 항아리 작고 겸손한 부리라고 얕본 거죠 침묵하는 부리가 얼마나 험악한지 모가지가 독사를 닮았다는 걸 잊으셨나요
백자청화봉황무늬 항아리 나를 가둔 손가락을 분지르고 뱀의 모가지로 칭칭 감아버리려구요 유리질이 녹아내려 날개가 젖네요 까짓 그래도 부수고 말거에요 내동댕이쳐야죠 드디어 나는 떠납니다 안녕
이런, 날개가 젖었다는 걸 깜빡했어요 항아리를 깨뜨리라고 파괴해야 한다고 제발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유약에 젖은 발톱이 녹아내리고 있어요 죽어야만 깨지는 알이라면 까짓 그런데 내가 죽으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죠 항아리 밖의 세계는 어디에 있나요 대답해요 당장 웹진 『시인광장』 2023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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