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현대)

권위상 시인 / 사라진 봄 외 1편

파스칼바이런 2023. 4. 6. 05:00

권위상 시인 / 사라진 봄

 

 

서부간선도로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서해안고속도로라 한다

서부간선과 서해안고속 그 경계는 어디일까

이어져 연결된 도로인데

표지판에 분명히 씌어 있을 텐데

못 보았는가 보다

 

한 해가 지나고 다음 해가 온다는 날

해가 뜨는 것도 똑같고 어제와 바뀐 것도 하나 없는데

새해가 왔단다 아무 변한 것 없이

아무 한 것도 없이

 

봄이 그렇다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

벚꽃 잎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몇 번 졸더니

봄은 벌써 가고 없다

누구는 봄은 없다고 단언한다

 

현기증은 귀에 봄이 와서 그렇단다

조금만 기다려보란다

병원을 나오자

봄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있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권위상 시인 / 벽보를 붙이며

 

 

벽보를 붙이며

이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실낱같은 희망이 꿈틀거렸다

너는 나갔지만

나는 너를 보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너를 찾아야 할 의무가 있고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너는

시지푸스의 바위

그림자에 놀라 펄쩍 뛰던

너는 굴뚝의 연기일 뿐이다 그래도

돌아오너라

나를 용서해다오

 

한 무리의 노인들이 전신주에 물을 뿌리고

벽보를 뜯어내지만 나는 또 붙일 것이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너의 신상과 특징 그리고 목소리를 복구할 때까지

너를 인간으로

환생시킬 준비가 될 때까지

 

 


 

권위상 시인

부산에서 출생. 울산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 1985년 <시문학> 주최 전국대학문예 입선. 2012년 《시에》로 등단. 현재 (주)예술과기술 대표이사. 민족문제연구소 산하 민족문학회 사무국장.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 위원장. 부산작가회 회원. 시집 『마스카라 지운 초승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