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상 시인 / 사라진 봄 외 1편
권위상 시인 / 사라진 봄
서부간선도로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서해안고속도로라 한다 서부간선과 서해안고속 그 경계는 어디일까 이어져 연결된 도로인데 표지판에 분명히 씌어 있을 텐데 못 보았는가 보다
한 해가 지나고 다음 해가 온다는 날 해가 뜨는 것도 똑같고 어제와 바뀐 것도 하나 없는데 새해가 왔단다 아무 변한 것 없이 아무 한 것도 없이
봄이 그렇다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 벚꽃 잎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몇 번 졸더니 봄은 벌써 가고 없다 누구는 봄은 없다고 단언한다
현기증은 귀에 봄이 와서 그렇단다 조금만 기다려보란다 병원을 나오자 봄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있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권위상 시인 / 벽보를 붙이며
벽보를 붙이며 이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실낱같은 희망이 꿈틀거렸다 너는 나갔지만 나는 너를 보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너를 찾아야 할 의무가 있고 어디선가 헤매고 있을 너는 시지푸스의 바위 그림자에 놀라 펄쩍 뛰던 너는 굴뚝의 연기일 뿐이다 그래도 돌아오너라 나를 용서해다오
한 무리의 노인들이 전신주에 물을 뿌리고 벽보를 뜯어내지만 나는 또 붙일 것이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너의 신상과 특징 그리고 목소리를 복구할 때까지 너를 인간으로 환생시킬 준비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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