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중 시인 / 이별 근처 외 1편
박수중 시인 / 이별 근처
기다리는 우연은 끝내 오지 않았다
정거장앞 거리에서 2인조 밴드가 적막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소음이 노을빛 따라 파문으로 번져 나간다 바람이 지친 하루를 깨운 듯 저녁에 기상하는 옅은 안개가 다가온다 집어등集魚燈같은 등불을 켜고 모여드는 몇 안되는 사람을 놓고 허스키 보컬이 흩어진 밤을 부르고 있다 질겅질겅 권태를 씹고 있는 노랑머리 앞에 놓인 바구니에 손을 넣었다가 혹시나 뒤를 돌아다 본다 오래전 풍경만이 눈길에 떠오를 뿐 아무도 보이지 않고 이내의 푸른 허공속을 귀를 찢는 헤비메탈의 강렬한 비트만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
나는 이별의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박수중 시인 / 플래시 몹 flash mob*
누가 기억의 고요를 밟고 지나가는가
광장으로 갔어요 소식을 모르는지 오래지만 혹시나 당신이 열광하던 팝가수의 거리공연에는 나타날까 싶었거든요
간절하지만 당신을 향한 나의 몸짓은 그저 허수아비 꼴이었어요 군중은 일정한 율동으로 같이 움직이며 물결따라 표정이 흘러갔지요
멍멍한 반향反響은 내 귀가 먹어 가는 징조라는데 아득히 당신의 목소리가 외딴 섬처럼 들려오는 듯 했어요 아주 짧게 끊어지며 이어지는 섬광속으로 나는 한순간 정지된 젊은 날의 당신을 보았어요
이윽고 잔치가 끝나고 흩어지는 공간에 당신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모두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제각기 다른 시간의 뒷모습들로 바람처럼 빠져 나가고 있었지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sns로 연락하여 한시에 모여 행사나 놀이를 하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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