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근상 시인 / 가을비 외 2편
육근상 시인 / 가을비
너무 어릴 적 배운 가난이라서 지금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제는 더 늙을 것도 없이 뼈만 남은 빈털뱅이 아버지가 어디서 그렇게 많이 드셨는지 붉게 물든 옷자락 흩날리며 내 옆자리 슬그머니 오시어 두 손 그러쥐고 우십니다 산등성이 내려온 풀여치로 우십니다
육근상 시인 / 달 강
행상 나간 엄니는 오밤중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나는 양칭이 길 처녀 귀신만 산다는 달 강 건넜네
무청밭 지나가는 짐승이 어린애 울음소리로 자지러지면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 가지가 목덜미 싸늘하게 핥고 갔네
고개 넘느라 이슬이 다 된 엄니 따라 걷는 달 강 길에는 망초꽃으로 쏟아져내린 별들이 기우뚱기우뚱 발등에 차이기도 했네.
-시집 <여우> 중에서
육근상 시인 / 만개(滿開)
꽃놀이 갔던 아내가 한 아름 꽃바구니 들고 흐드러집니다
선생님한테 시집간 선숙이 년이 우리 애들은 안 입는 옷이라고 송이송이 싸준 원피스며 도꾸리 방 안 가득 펼쳐놓았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온종일 살구꽂으로 흩날린 곤한 잠 깨워 하나하나 입혀보면서
아이 예뻐라 아이 예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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